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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Paul (축일 6월 29일)

 

사울이라고도 불리는 바오로는 히브리 전통을 충실히 고수하던 벤야민 지파의 유다인 집안 출신으로 킬리키아의 타르수스(Tarsus)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부친의 상속으로 로마 시민권을 지니게 되었는데 그것은 훗날 선교 활동하는데 유용한 것이었으며 특히 로마 황제에게 직접 상소할 수 있는 권리를 갖도록 했다.

 

그는 당대의 명성 높던 랍비 가므리엘 1세 문하에서 히브리 교육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유학했다. 그곳에서 성서에 관한 정규 교육을 거쳤으며 바리사이파 교육 방침에 따라 토라를 철저히 익혔다. 또한 랍비 관습을 쫓아 육체 노동을 배워 실천하였다. 그는 사도가 된 후에도 신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몸소 일하며 필요한 것을 마련하였다.

 

사도행전에서는 바오로가 그리스도교와 첫 대면하던 장면을 예루살렘에서 스테파노의 순교의 피로 기록하고 있다(사도7, 54-8 참조) 스테파노의 순교현장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에 광신적 유다교인이었으며 반 그리스도교적 박해자였다. 그의 박해 활동은 다마스쿠스(Damascus)까지 확장되어 갔다. 그가 다마스쿠스(Damascus)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러 가던 중 다마스쿠스가까이 이르렀을 때 일생 최대의 사건이 일어났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나고 체험한 것이다. 이 환시는 그의 극적인 개종을 불러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그를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로 만들어 주었다. 그것은 그를 향한 형언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의 발견이었고 그로인해 바오로의 인생관, 신앙관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이다.  

 

그 후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지낸 후 설교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돌아왔다. 그는 즉각 유대인들의 맹렬한 반발에 직면하였는데 그에 대한 위협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레타(Aretas) 왕의 총독이 바오로를 잡으려고 성문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밤을 이용하여 비밀리에 성벽을 타고 도시를 빠져나갔고, 39년경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났으며, 바르나바(Barnabas)의 지원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입적하였다.

 

그 후 타르수스(Tarsus)에서 몇 년을 지내다가 43년경에 바르나바에 의하여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으며 그곳 교회의 교사가 되었다. 이것이 이방인을 상대로 하는 대 전교의 시초가 되었다. 45년경부터 바오로는 세 차례의 전교 여행을 하게 된다. 45년부터 49년까지 그는 키프로스(Cyprus), 베르게, 비시디아 안티오키아, 리가오니아를 전교했고, 이 여행에서 이름을 바오로로 개명했다. 이 여행을 마치고 49년경에 예루살렘에 온 그는 베드로(Petrus)와 야고보 및 다른 사도들을 설득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확신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그리스도교회의 보편성 확립에 기여한 한편, 그의 이방인 선교를 예루살렘 교회가 인정하도록 하는 등 교회의 체제 면에서도 가일층 진보된 단계를 맞게 하였다.

 

바오로는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체험한 위대한 회심자였다. 광신적 바리사이파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교에 혹독한 박해까지 서슴치 않았던 그가 모든 정열을 쏟아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복음 선포에 목숨 바쳐 헌신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그는 세 차례의 선교 여행에서 온갖 곤경과 여러 차례의 죽음의 위기를 겪었으나 이방인의 사도라 불릴 만큼 성령이 이끄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다. 선교여행 중 트로아스(Troas)에서 체포되어 로마로 끌려가서 사도 베드로와 같은 날에 처형되었다. 테르툴리아노에 의하면 그는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참수치명 하였다. 공식 축일은 6월 29일이고, 개종 축일은 1월 25일에 지낸다.

 

바오로는 그리스도교의 최대의 전도자였고, 또한 최대의 신학자였으며, 오늘의 그리스도교가 있게 한 그리스도교 형성사상 가장 중추적 인물이다. 그리스도교의 신학은 그에 의해서 틀이 잡혔으며, 후세에 끼친 영향은 헤아릴 수가 없다. 여러 서신 속에 전개된 그의 사상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살아야 할 우리 인간은 우선 죄지은 인간으로서 죽었다가,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몸소 그것을 실천하였다.

 

바오로는 가장 뛰어난 그리스도교 저술가로 꼽힌다. 첫 복음서인 마르코 복음서가 기록되었을 무렵(약 70년경)은 바오로가 쓴 서간들이 널리 알려진 다음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에 관하여 최초로 글을 써서 전한 이가 바오로인 셈이다. 복음사가들이 예수님의 역사적 과거의 사실을 증언하는데 비해 바오로는 새로 세워진 교회들 안에서 신령한 방법으로 현존하시면서 활동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즉 그는 복음사가들과 달리 성령을 통해 활동하시는 교회의 예수님을 증거한 것이다.

  

 바오로가 저술한 서간 : 로마서(코린토스에서 57-58년); 코린토 1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코린토 2서(필립비에서 57년); 갈라티아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콜로새서, 필리피서, 에페소서, 필레몬서(로마에서 61-63년); 테살로니카1, 2서(코린토스에서 51-52년) 및 사목서간인 티모테오서와 티토서 


 

성바오로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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